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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달러는 어떻게 기축통화가 되었나?

by 알고싶지식 202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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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란?

기축통화란 국제 무역거래나 금융거래에서 결제 수단으로 이용되는 통화를 칭하는 말로 통상 달러, 유로, 엔화 등을 가리키는 말로 "트리핀 교수"가 처음 명명하여 사용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영국의 파운드화가 기축통화 역할을 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경제 패권을 차지하며 기축통화의 자리를 빼앗았다.

 

22년을 기준으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국제 결제 시 달러는 무려 39.92%, 유료가 36.56%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든 미국의 전략

설명하기 앞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금본위제도(金本位制度)에 대해서 간단한 이해가 필요하다. 금본위제도란 화폐의 가치와 일정량의 금의 가치가 등가관계를 유지하는 본위제도를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세계는 금화(금)을 화폐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실제 금을 이용한 거래는 소규모의 거래가 아닌 규모가 큰 무역과 같은 거래에서 운반의 불편으로 인해 시장에 유통시킬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 단점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지폐를 사용하면 되지 않았을까? 최초의 화폐는 송나라에서 사용 되었다. 하지만 지폐에도 문제가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위조가 쉽고 가치에 대한 "신뢰"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마르코 폴로'라는 사람이 원나라에 방문했다가 "중국 사람들은 금화 대신 종이로 돈을 사용한다"라고 말을 했다가 허풍쟁이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만큼 당시에 지폐에 대한 신뢰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능한 일화이다. 또한 과도한 화폐의 발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무너지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예로 짐바브웨나 베네수엘라가 있으며 지폐는 땔감, 벽지 등으로도 사용될 정도로 가치가 없는 종이쪼가리가 될 수 있다.

 

금 1돈은 약 3.75KG으로 무겁고, 종이 화폐 즉 지폐는 가볍지만 위조,변조, 가치에 대한 문제로 신뢰성 문제가 있고, 인플레이션 우려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본위제도를 시행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지폐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일정량의 금을 지폐로 교환할 수 있는 보증서의 역할로써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하게 되었다. 여기서 정부나 은행등 공권력이 보증을 해주기 때문에 아주 매력적인 화폐로 사용될 수 있었다.

 

미국의 브레튼우즈협정

일정량의 금을 보유한 보증서로 화폐가 사용되려면 일단 금을 많이 보유해야 한다. 이는 금본위제도의 단점이기도 합니다.  금은 생산량 및 총량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국은 무려 전세계 금을 70% 이상 보유했고, 금본위제도를 시행하기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94년 미국의 브레튼 우즈에 44개국의 연합국을 초대, 통화 금융 회의를 열었으며 이를 브레튼우즈 협정이라고 한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브레튼우즈협정을 통해 달러를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협정의 주요 내용은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본위제를 실시 (금 1온스 = 35달러), 그 외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통화를 달러로 고정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점이 히나 생깁니다. 전 세계에서 달러를 사용하기 위해선 달러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게도 흩어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은 막대한 달러를 뿌리기 시작한다. 특히 유럽, 일본에 대해 무상원조에 가까운 금액을 뿌리게 됩다. 또한 적자 무역을 통해 결국 전 세계로 달러를 퍼트리는 데 성공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천문학적인 금액의 원조와, 만성적자로 인해 세계로 뿌려지고 있는 달러

달러에 찾아온 위기

금본위제도를 통해 영원할 것 같던 달러도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원조를 통한 천문학적인 금액이 빠져나갔고, 1950년대 눈부시게 성장하는 일본과 서구와 다르게 계속되는 만성적인 적자로 인해 점점 달러의 유출이 상당했다. 달러는 금의 보증이였기 때문에 미국이 가진 금 보유량이 점점 줄어들며 달러에 위기가 찾아온다.

 

여기에 결정타가 발생하는데 바로 베트남 전쟁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국제수지 적자가 발생한 미국은 지폐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지폐는 금의 보증서라고 했다. 만성적자와 천문학적인 원조로 인해 이미 줄어들고 있는 금의 보유량을 넘어선 화폐를 발행하게 되었다. 이는 더 이상 보증으로써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므로 달러에(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

 

금본위제를 바탕으로 지폐가 가치로서 인정을 받고, 경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 35달러=1온스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35달러로 1온스의 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바닥난 미국의 금 보유량

불안감, 달러의 평가절하로 인한 가치 하락으로 인해 세계에선 미국에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금태환)를 하게 되었지만,  현재 미국의 상황은 발행된 달러보다 보유한 금액이 적은 상태이기 때문에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태환을 이행하지 못해 금태환을 일방적으로 폐지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를 1971년 미국의 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이 취한 경제 조치로 닉슨쇼크라 불린다. 35달러는 1온스의 금의 가치를 가지기로 약속을 했던 브레튼우즈체제가 공식적인 폐지는 아니지만 사실상 폐지가 되는 사건이었다. 추가로 닉슨쇼크에는 상승하는 물가와 인플레이션을 잡고자, 임금을 동결하고 수입품에 10%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정책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많은 나라들이 브레튼우즈체제를 떠나고 변동환율제를 적용하게 되어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폐지된 브레튼우즈체제로 미국도 변동환율제를 적용 달러의 가치는 무려 1/3으로 토막이 나게 된다.

이번엔 금이 아니라 석유다

브레튼우즈체제가 무너지고 달러의 가치가 1/3으로 떨어지면서 미국은 다시 한번 기축통화를 위한 묘책을 찾아내는데 그게 바로 석유였다.

 

이를 고안한 사람이 '헨리 키신저'로 때는 1971년 사우디에 협정을 맺으러 방문하게 된다. 이때 사우디는 중동전쟁을 진행 중이었으며 키신저는 막대한 미국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사우디 왕가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대신 석유결제를 달러로만 하도록 협약을 맺게 된다. 이에 따라 다른 중동 국가들도 협약을 맺으며 다시 한번 미국은 석유=달러라는 금본위랑 비슷한 개념으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

 

이게 얼마나 기가막힌 전략이였냐면, 기존의 금본위가 무너진 이유는 미국의 금보유량이 부족해서였지만, 석유=달러 페트로달러시스템이라 불리는 방식은 미국이 석유를 보유하지 않아도 기축통화로 달러를 자리매김하게 할 수 있는 엄청난 전략적 성공이었다.

 

또한, 전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량의 화폐는 달러가 유일무이하며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한 신뢰를 기반으로 오늘의 기축통화로 자리를 잡고 있다.

 

여담으로 중동의 내전으로 인한 석유 공급의 차질로 오일쇼크가 발생했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는 달러의 1/3으로 토막 난 달러의 가치하락으로 인해 석유의 가격이 맞춰서 상승했다고 해석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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